전시 소개

직선과 곡선, 기하학적, 유기적 형태는 도시의 이중성

20세기의 위대한 건축가이자 화가 조각가인 르 코르뷔지에는 “삶 자체가 하나의 건축이다.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지고 만다. 전해지는 것은 사유뿐이다.” 라고 이야기했다. 오랜 시간 건축인으로서 살아온 지난 날을 돌이켜보면 건축의 과정은 장소와의 만남과 헤어짐이고 설계자는 타인이 발견하지 못한 장소의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여 공간으로 변화시킨다. 돌과 나무와 유리와 강철은 건축의 살과 뼈를 만들고 설비 시스템과 용도기능은 건축을 도시와 함께 숨쉬게 만든다. 장소성은 건축을 만나서 태어나고 도시 및 자연과 관계 맺으며 삶의 추억을 형성한다. 사계절과 밤낮의 시간 속에 공간은 변화하고 재료의 쇠락은 인간의 주름살과 같이 건축과 도시에 세월의 켜를 새긴다. 언젠가 철거되어 새로운 건축이 그 자리를 대체하더라도 오랜 세월 동안 장소를 점유하던 추억은 장소의 이름에, 도시의 스카이라인에, 도면 혹은 건축과 함께 했던 사람들의 스냅 사진에 함께 남는다.

어제의 내가 3차원의 거대한 도시 및 건축물을 만드는데 기여했다면 지금의 나는 그것을 2차원의 평면 위에서 유화라는 매체를 통해 해체하고 재탄생 시킨다. 이것은 새로운 예술적 탐구이자 과거의 경험에 대한 사유의 과정이다.

나는 평면 위에 점 선과 면을 사용해 환영적 회화적 공간을 구축하고 더 나아가 도시적 공간과 그 곳을 살아가는 인간과의 관계 실존적 가치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공간은 물리적 정신적 요소를 모두 갖고 있다. 따라서 공간은 물리적 형태를 넘어 그곳을 경험하는 사람과의 현상적 관계를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정의된다. 도시와 도시 건축물은 인간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만들어진 익숙하고 편리한 공간이지만 그 곳에는 삶과 죽음 경쟁 절망 고독이 공존한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도시를 에로스와 죽음의 충동 그리고 욕망이 가득한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라고 정의했다. 이것은 시각적 지적 쾌락을 제공하지만 그 이면에 우울함과 어두움을 간직한 환상적 공간을 의미하며 화려한 무대 뒤의 소외와 고독을 간직한 세계이다. 나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직선과 곡선 기하학적 형태와 유기적 형태 등의 대조적 요소들은 그러한 도시적 이중성을 보여준다. 건축 설계도를 그리듯 재단된 면들로 시작한 이미지는 회화적 과정을 통해 해체되고 재조합되어 화면 속에 환영과 물성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공간과 세계를 구축한다. 캔버스와 유화물감 작가적 상상력으로 이루어진 ‘작은 구조물’ 은 현대 도시의 표현이자 나 자신의 자전적 판타스마고리아이다.

나의 이르지 않은 첫 개인전 <URBAN FANTASY>은 50여 점의 유화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초기의 사실적 풍경부터 시작해 지금의 기하학적 추상화로 이루어진 작업들은 내가 살아온 세계에 대한 사유이자 삶의 고통과 기쁨 빛과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족 친지 지인 스쳐 지나간 인연들 풍경 공간 나의 세상을 있게 해준 이들에 대한 감사이다.

박재영.